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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디빌딩의 역사,기원
작성자 FzSuYa (ip:)
  • 작성일 2014-04-09 11: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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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빌딩의 기원


오늘날 보디빌딩에는 중량 기구를 사용하여 운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운동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그 발생에 대한 자료는 현재 이렇다 할 문헌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은 없지만, 대략 기원전 2,500년의 옛날 이집트에서 청년들 사이에 무거운 중량들기 운동이 행해지고 있었다고 하고, 기원전 1122∼249년의 고대 중국의 주조(周朝) 시대에는 군인을 위해 긴 활을 다루거나 검술과 더불어 중량들기가 특수 검사 종목의 하나로 국가에서 규정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특히 검투사와 레슬링 선수들이 힘과 인내를 위해 보디빌딩 훈련을 했었다. 그들은 오늘날의 기구가 주는 혜택을 받지는 못했으나, 돌이나 통나무를 들어올림으로써 이 운동을 하였다. 이들에게는 보디빌딩 훈련이 적자생존과 같은 필수물이었고 신체적 발달과 능력에 생명을 걸고 있었다.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그리스 시대는 '힘의 시대'라고 불리었다. <크로트>나 <밀로> 같은 힘센 장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송아지가 어미소가 될 때까지 어깨에 메고 다니는 훈련을 하여 근육 단련을 했고, 이와 같은 훈련 방법이 오늘날의 보디빌딩 운동의 훈련 방법으로 남게 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현재의 보디빌딩과 유사한 운동을 했다. 한때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보디빌딩을 연습하는 것이 주요 범죄가 되었는데, 당시 마케도니아에게 점령되었던 페르시아인들은 비밀리 지하 감방에서 체력 단련을 했다. 물론 그것은 압제자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후, 유럽에서는 역도(Weight lifting)라는 것이 발생하였다. 19세기말, 근육 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것은 단지 근육을 생존이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 시대에 근육의 발달을 인간의 육체에 대한 찬미로 받아들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돌을 들어올리던 고대의 전통은 역도라는 현대의 스포츠로 발전하였고, 유럽에서의 역도는 직업적인 역사(力士)가 출연하는 오락의 한 형태였으므로 그들은 체격이야 어떻게 보이든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현대에는 건장한 육체를 가지려고 하였다.

19세기에 독일의 유젠 산도우(Eugen Sandow, 1867∼1925)가 출현하고부터 보디빌딩 운동은 본격적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그가 그 당시에는 가장 힘센 사람은 아니었으나, 해부학을 전공한 그는 체격과 신체의 강건함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였으며, 보디빌딩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유젠 산도우는 유럽 각국을 비롯하여 미국에도 건너가서 그의 특기인 보디빌딩과 근육의 힘을 세상에 보이고 많은 예찬자들을 얻었다. 이즈음 미국에서도 힘과 육체미가 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상당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이른바 '육체 문화'를 이루었다.

'육체 문화'란 시골이나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대도시로 나와서 생활 양상이 달라지고 또 여러 면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므로 절제된 생활과 건강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 것이 '육체 문화'의 근원이었다. 또 맥주를 마신 듯이 배가 나온 역사보다는 고대 그리스의 육상 경기자의 이미지에 맞는 체격과 건강을 모델로 하여 보급시키려 하였다.

이 때 이들은 유젠 산도우와 같은 '육체 문화'의 슈퍼스타들을 발견하였다. 산도우는 직업적인 역사로서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다가 1890년경 미국으로 건너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광고하고 다니던 플로렌츠 지그펠트란 사람에게 발탁되었다. 무엇보다도 산도우는 아름다운 체격을 갖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의 근육 발달의 아름다움과 균형미에 탄성을 금치 못하였다. 남성 신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는 이때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고작해야 빅토리아 시대에 소수의 미술가들만이 남성의 누드를 그림의 주제로 삼았을 뿐이었다.

산도우의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바벨과 덤벨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그는 주(週)당 수천 달러의 수입을 얻고, 책과 잡지 등의 판매를 통해서 그 주위에는 하나의 산업이 형성되었다.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우승자들에게는 금으로 된 자신의 조각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자신의 신비로운 분위기의 희생물이 되었는데, 어느날 그의 차가 추락했을 때 한 손으로 차를 구덩이에서 끌어 올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다 뇌출혈로 죽었다고 한다.

유젠 산도우의 뜻하지 않은 죽음으로 이 붐이 수그러졌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번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후 역도 선수로서 '러시아의 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던 '게오르게 하켄슈미트'라는 사람은 1890년 러시아 역도 챔피언과 기타 레슬링 챔피언이 되었다가 영국으로 이주해 온 후 행운을 얻었다. 그는 유창한 달변가였을 뿐 아니라 '생명의 기원'과 철학적 작품을 써내는 작가로서 버나드 쇼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지성인들과 논쟁하기도 하는 지식인이었다. 이 시대에는 이외에도 아탈라 교수 아더 색슨, 헤르만 고머, 오스카 겐펠트, 풀룸같은 역사들이 많이 있었으며, 이들의 탁월한 힘의 전통은 폴 앤더슨과 알렉세이예프 등 기타 오늘날의 다른 역도 선수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육체 문화에 대한 추구를 실제적으로 종교화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언제나 '건강에 미친 사람'의 전형이라 할 수 있었던 베르나르 멕파든이었는데, 출판업자였던 그는 허약한 육체는 부도덕하다는 신념에서 잡지 '육체 문화'를 창간했으며 후에는 이 분야에 거의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한 신문 '뉴욕 이브닝 그래픽'지를 출판해냈다. 그는 또한 '미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다듬어진 남자'를 뽑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여러 경연대회를 주최하였는데 1903년에 처음 열어 타이틀과 함께 천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콘테스트와 잡지는 수십년간 성공적이었으며, 그는 그가 외치던 것들을 계속 실행에 옮겼다. 아침마다 뉴욕시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에 있는 집에서 도심에 있는 사무실까지 맨발로 출근하고, 상체를 벗고 자기 잡지에 나타나는 등 70세까지 건강과 절제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맥파든은 운동 기술보다 신체의 시각적 발달을 강조하여 보디빌딩의 진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의 콘테스트는 단지 근육의 힘이 얼마나 되는가보다는 육체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여기서 그 후 수십년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중의 하나가 된 슈퍼스타가 출현했으니 그가 바로 1921년 우승자 안토니오 시실리아노이다. 그는 명성이 높아지자 이름도 찰스 아틀라스로 바꾸로 '다이나믹 텐션'이라 불리는 신체 단련 통신 강좌의 권위도 얻었다. 15년 이상 아이들은 잡지에서 이 강좌에 대한 광고를 보면서 컸다.

중간에 보디빌딩을 하면 심장이 해롭다든가,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미신 아닌 저해 소문도 한때 항간에 퍼졌으나, 1950년부터 보디빌딩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 조사가 있어서 올바른 트레이닝을 하면 기능 장해는커녕 건강을 증진시키고 체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이 확인이 되었다. 모든 스포츠맨들은 자기 전문으로 하는 스포츠의 경기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 훈련을 채택하여 근력(筋力) 강화에 진력하게 되었으며, 애호자의 수는 이후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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